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인 칙서 (문단 편집) ==== 배경 ==== 이미 베네치아 공화국은 [[바실리오스 2세]]에게 함대를 지원해 주면서 기존 10%였던 수출입 관세를 완화받은바 있었고, 10세기 최후반 즈음에는 달마티아 공작 작위를 받아 동로마 제국의 제후국임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생명선인 [[아드리아해]]의 방위를 대신 맡고 그 동안(東岸)인 [[달마티아]]의 보호권을 확보했다. 역사적으로 보나 문화적으로 보나 여느 [[이탈리아 반도]]의 도시들보다 동로마 제국에 가까웠던 베네치아인들이었기에 가능했고, 제국 역시 [[콘스탄티노플]]에서 멀리 떨어진 아드리아해 끝자락까지 통제가 닿기는 힘들었으므로 서로 Win-Win인 조치였다. 그러나 11세기 말인 1081년이 되면 상황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는데, 베네치아 공화국은 해상무역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해 도시국가 중 수위의 해군력, 외교력, 자본력 등을 갖추었던 반면 동로마 제국은 [[아나톨리아]]를 거의 상실하면서 상황이 굉장히 나빠진 상태였다. 심지어 4월에 쿠데타로 집권한 황제 [[알렉시오스 1세]]는 아나톨리아 전역과 북방 유목민 문제를 후순위로 밀어두고 [[로베르 기스카르]]의 침공에 대응하여 남은 군대를 끌어모아 친정에 나선 상황이었다. 이때, [[신성 로마 제국]] 등과 함께 외교적 대응책의 대상으로 고려된 것이 베네치아 공화국이었다. 베네치아 역시 명목상 제후국이었고, 노르만인들이 성공할 경우 아드리아해의 입구 양안을 모두 차지하는 적대적 세력이 생기는 셈이었으므로 함대를 동원하여 1081~1085년의 로마-시칠리아 전쟁 기간 동안 해전을 통해 노르만군에 큰 타격을 입히는 공을 세워 동로마 제국을 도왔다. 때문에 제국 정부는 대가로 이 금인 칙서를 통해 베네치아에 통상 혜택을 부여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